2026년 10월 28일
자기 의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리스도 앞에 두 손을 벌리라
로마서 10장 4절
관리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접하면서도 구원의 은혜 밖에 머무는 비극은 왜 일어납니까? 유대인의 비극은 무지에서 나온 비극이 아닙니다. 교만에서 나온 비극이었습니다.
그들은 손에 성경을 들고 있었고 회당에서 그 말씀을 수시로 읽으며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실제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자기 수준으로 낮춘 율법을 지켰다고 자신을 안심시켰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가난뱅이임을 인정하고 선물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힘으로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쪽을 택한 자존심이 그들을 그리스도 밖에 머물게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가까이 있는 것은 쉽게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것은 쉽게 가벼워집니다. 교회의 언어에 익숙하고, 예배의 순서에 익숙하고, 봉사의 자리에 익숙한 사람이 정작 "예수는 나의 주님이시다”라는 고백 앞에서는 한 번도 자기 전부를 걸어 본 적이 없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과 그 유산의 주인이신 분께 항복한 것은 다른 일입니다. 그래서 물려받은 신앙은 복이지만, 물려받은 데서 멈춘 신앙은 유대인의 특권 목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마침이 되셔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되어 주셨습니다.(롬 10:4)”라는 복음은 더할 수 없는 깊은 위로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내려오셨고, 이미 올라오셨기에 우리가 할 일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롬 10:8)라고 하신 그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 받아들임조차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안을 들여다보며 ‘내 믿음이 충분한가?’라고 묻다가 주저앉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그 믿음을 선물로 주신 분의 크기이기 때문입니다. 손이 가냘파 잡고 있지 못해도 그 손을 붙잡고 있는 손이 견고하다면, 그 사람은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할 일을 주고 혼자 하라고 합니다. 반면에 복음은 다 된 일을 알리고 와서 받으라고 합니다.
율법 앞에서 자기 손을 내려놓은 사람만이 그리스도 앞에서 두 손을 벌립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겸손히, 조금도 머뭇거리지 말고, 이미 다 이루어 놓으신 그분 앞에 서서 두 손을 벌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