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1일
율법이 가리킨 그 끝, 그리스도
로마서 10장 5절
관리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 길을 두고 사람은 늘 같은 자리에서 넘어집니다. ‘행위냐, 믿음이냐?’입니다. 교회는 이 둘을 오랫동안 율법과 복음이라 불러왔습니다.
율법이 말하는 의는 분명합니다. "율법을 행한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입니다.”(롬 10:5) 여기서 무게는 받은 사람도, 들은 사람도, 아는 사람도 아니라 오직 ‘행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것도 전부를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조목에서 걸려 넘어지면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조목을 주셨습니다. 게다가 율법은 손과 발의 행동만 묻지 않습니다. 마음속의 미움과 음욕과 탐심까지 묻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속사람까지 포함한 전인격의 순종이고, 그것도 혼자 힘으로 이루어 내야 하는 순종인 것입니다. 율법은 요구만 할 뿐 능력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 앞에 온전히 설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이 요구는 우리를 절망에 몰아넣고 끝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을 행한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은 지금도 폐기되지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요구를 다 채울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라면 절망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조건을 홀로 채우신 분이 사람 가운데 계십니다. 율법이 요구한 완전한 순종을 남김없이 드리시고, 율법이 선고한 죽음을 당신의 죽음으로 대신 치르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마침이 되셔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되어 주셨습니다.(롬10:4)”라고 말합니다. 율법을 홀로 이루신 그분이, 율법을 행한 자에게 약속된 그 생명을 이제 모든 믿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이제 우리에게 무엇입니까? 율법은 여전히 사람에게는 닫힌 문입니다. 아무도 제 힘으로 그 문을 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닫힌 문이 우리를 돌이켜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제 힘으로 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이미 열려 있는 다른 문인 복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할 일을 주고 혼자 해내라 하지만, 복음은 다 이루어진 일을 알리고 와서 받으라고 합니다. 받는 데는 빈손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율법 앞에서, 빈손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닙니다. 자기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은 사람만이, 그리스도 앞에서 두 손을 벌려 그 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