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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3길 27 (부암동) · 02-391-3230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성도를 위한 이중의 중보”

로마서 8:26

로마서 8장은 확정된 구원의 진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선포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자녀 됨의 증언, 장차 나타날 영광에 대한 고대, 그리고 소망 중에 참으며 기다리는 성도의 삶까지, 본장은 구원의 현재와 미래를 차례로 입증해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기다림의 자리에서, 성도가 마주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감 없이 직시하고, 그 한계 한가운데로 성령님께서 직접 들어오심을 선언합니다. 성경은 이 한계를 ‘약함’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이 물려받은 근원적인 한계이며, ‘이미’와 ‘아직’ 사이의 종말론적 긴장 속에서 피조물이 겪는 실존적 조건인 것입니다. 몸의 피곤함과 노쇠함, 지식과 이해력의 한계가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이 약함이 가장 분명하고 고통스럽게 드러나는 자리는 기도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은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는 것은 기도 행위 자체를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시험과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부합하는 최선의 기도가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기도는 종종 근시안적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요단 저편 땅을 보게 해달라고 간구했으나, 하나님은 “이것으로 네게 족하니, 이 일 때문에 더 이상 나에게 말하지 말라(신 3:26)”라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했으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고후 12:9)”라고 기도의 방향을 수정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 앞에서, 인간의 기도는 그 전모를 알지 못한 채 드려집니다. 그러나 이 무지와 약함은 절망의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약함 가운데로 직접 들어오셔서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도우시다’로 번역된 헬라어 ‘쉬난틸람바네타이’(synantilambanetai)는 무거운 짐을 ‘맞은편에서 함께 들어 올린다’라는 뜻의 복합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우리와 함께 그 무게를 짊어지시는 인격적인 동행임을 나타냅니다. 하늘 보좌 우편에서 성도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외적 중보 사역과 성도의 내면에 내주하셔서 약함을 떠받치시는 성령의 내적 중보 사역이 동시에 작동합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마 11:28)”라는 주님의 초청은 추상적인 위로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는 기도의 자리에서 성도가 쓰러지려 할 때, 그 멍에를 함께 메십니다. 이처럼 구원받은 성도의 기다림은 그리스도의 중보와 성령의 중보라는 두 기둥이 그 기다림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은혜이고 감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