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1일
완악함까지 다스려 이루시는 구원
야고보서 1:13
관리자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고, 바로도 자기 마음을 완악하게 했습니다. 이 둘 사이에 모순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다는 말은 없던 악을 사람 속에 집어넣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또 시험하지도 않으시기 때문입니다(약 1:13).
바로는 이미 불신자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있던 완악함을 제어하시던 손길을 거두심으로써, 그를 그 마음대로 내버려두셨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겨울 해가 지면 녹았던 땅이 다시 얼어붙듯이, 붙드시던 은혜가 거두어지면 완악한 마음은 더욱 굳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십니까? 요셉의 형들이 그를 해치려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창 50:20).”
바로의 완악함을 그대로 두시고, 열 가지 이적과 홍해의 구원을 이루신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막다른 자리에 이르게 하심으로, 그 구원이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을 온 세상이 알게 하신 것 입니다.
이 진리의 절정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을 못 박은 것은 사람들의 악한 손이었으나, 그 죽으심은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이었습니다(행 2:23)”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악한 손을 통해, 도리어 세상의 구원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참 백성은 혈통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유대 사람 가운데서 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 가운데서도(롬 9:24)” 오직 긍휼로 부르심을 받은 긍휼의 그릇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자격이나 공로에서 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긍휼에서 난 것입니다. 우리는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고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절망의 자리에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사람의 악조차 돌이켜 구원의 통로로 삼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그 긍휼의 손에 나를 온전히 맡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